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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C Tech

[HEC Tech] 비(非)물질: 빛, 공기, 데이터의 건축 (W/ 정현재)

 

안녕하세요? 에디터 H입니다. 😊

 

오늘은 비물질 재료가

어떻게 건축의 언어가 되는지 살펴봅니다.

(1탄, 2탄, 3탄, 4탄, 5탄, 6탄, 7탄, 8탄 💖)

 


 

 

 

INTRO: 무형의 재료로 건축을 다시 쓰다

 

오늘날 건축물에서는 보이지 않는 힘, 즉 공기·빛·소리·데이터가 경계를 설정하고 공간을 조직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현대 건축 환경에서는 물리적 벽체보다 동적으로 제어되는 무형의 존재가 구조적 역할을 더 자연스럽게 수행하게 되었다.

“건축이 반드시 물질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 “형태가 사라져도 공간은 존재할 수 있는가?” 20세기 후반 이후 건축가들은 이미 이러한 질문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으며, 오늘날 기술은 그 실험을 산업적 규모로 확장하고 있다. 건축가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전통적인 벽체나 기둥 대신 무형의 '현상'을 매개로 공간을 정의해 왔다. 이러한 시도들은 오늘날 비물질 건축이 자리 잡는 개념적 기반이 되어 왔다.

 

 

감각의 건축: 비물질 건축의 선례와 확장

 

루이스 칸 건축가 Photo © the Kimbell Art Museum.출처: The New Criterion

 

루이스 칸(Louis Kahn, 1901-1974)은 빛을 단순한 기능적 채광 기술이 아니라 건축의 구조적 원리로 이해한 선구자였다. 그의 유명한 말인 "자연광이 없다면 방은 방이 아니다(A room is not a room without natural light)"는 이러한 시각을 대변한다.

 

미국 킴벨 아트 뮤지엄(the Kimbell Art Museum’s south portico), 2022. Photo © Iwan Baan.출처: Interior Design
 

 

텍사스 포트워스에 위치한 킴벨 미술관(Kimbell Art Museum, 1972)은 이러한 빛의 구조화 원리를 가장 잘 구현한 사례다. 이 건축물은 콘크리트 사이클로이드 볼트 천장(cycloid vault: 바퀴가 굴러가며 그리는 특정한 물결 곡선을 따라 만든 아치형 콘크리트 천장)을 사용하는데, 이 볼트는 정점 부분에서 두 개의 대칭적인 반쪽으로 나뉘며 틈을 통해 빛이 들어온다. 이 틈 아래의 날개 모양 반사판(reflector)은 텍사스의 강렬한 태양광을 아래 공간으로 부드럽게 내려보낸다.

 

미국 킴벨 아트 뮤지엄 © Kimbell Art Museum출처: The Louis I. Kahn Building ❘ Kimbell Art Museum ❘ 50th Anniversary

 

칸은 빛을 물감으로, 콘크리트를 캔버스로 여기며, 콘크리트의 색상과 질감까지 치밀하게 설계했다. 그는 "라벤더 톤을 가진 부드러운 회색"의 콘크리트 색상을 선택했는데, 이는 볼트의 기하학적 형태와 만나, 빛이 표면을 따라 부드럽게 퍼지며 내부에 ‘달빛(moonlit)’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주목할 점은, 칸이 오늘날과 같은 정량적 시뮬레이션 도구 없이 오직 경험과 직관, 그리고 재료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빛의 섬세한 질감과 공간의 정서적 무게까지 섬세하게 조율해냈다는 점이다.

 

스위스 엑스포 블러 빌딩(The Blur Building) © Yverdon-les-Bains 출처: Arquitectura Viva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S+R)의 블러 빌딩(Blur Building, 2002)은 '대기의 건축(Architecture of atmosphere)'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스위스 뇌샤텔 호수 위에 설치된 이 플랫폼은 31,500개의 고압 노즐을 통해 호숫물을 정화하고 미세한 안개로 분사해, 가로 300피트, 깊이 200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 구름을 만들어냈다. 이 건축물은 명확한 벽이나 형태 없이 자연(호수 물)과 기계(노즐, 기상 관측소)가 함께 만들어낸 안개 덩어리가 건축의 윤곽을 규정한다. 건축가는 이 공간을 시각적·음향적 기준점이 지워지는 ‘반-스펙터클(Anti-spectacle)’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스위스 엑스포 블러 빌딩(The Blur Building) © Yverdon-les-Bains 출처: Arquitectura Viva

 

나아가 방문객들은 ‘브레인코트’를 착용했는데, 이 코트는 위치 추적 센서를 사용해 사람들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누구와 가까이 머무는지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특정 두 사람이 같은 구역에 오래 머물거나,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등 ‘친화적 행동 패턴(Affinity)’이 나타나면 코트의 색이 변한다. 이는 안개라는 무형의 재료뿐 아니라, 사람들의 동선과 상호작용 같은 비물질적 데이터가 새로운 사회적·심리적 경계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영국 바비칸 센터의 ‘레인룸‘ (Barbican Centre Rain Room) © Londonist출처: Londonist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레인 룸(Rain Room, 2012)은 가시적인 형태 대신 공간적 현상이 경계를 만드는 또 다른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 설치물은 실내에 비가 내리는 공간을 구현하지만, 3D 센서가 관람객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사람이 있는 영역에서는 비를 멈춘다. 그 결과, 방문객은 빗속을 걸어 다녀도 젖지 않는 '건조 구역'이라는 보이지 않는 우산 아래에 놓이게 된다. 레인 룸은 보이지 않는 디지털 센서와 소프트웨어 논리가 물리적인 경계(젖음과 마름)를 설정하는 능력이 전통적인 벽체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12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2018년 샤르자 미술 재단(Sharjah Art Foundation)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 영구 설치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비물질적 경계' 기술이 예술을 넘어 예측 가능한 산업적 경험 설계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산업의 현재: 형태 없는 구조의 시대

 

건축에서는 이제 보이지 않는 요소가 벽이나 패널 같은 물리적 구조를 대신해 능동적으로 작동하는 반응형 구조(Responsive Structure)로 활용되고 있다. MIT 연구진이 개발한 전기 반응성 실크 패브릭은 그 변화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이 얇은 직물은 음파를 감지해 진동으로 바꾸고, 다시 그 진동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 마치 마이크처럼 작동한다. 하지만 건축적으로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소재가 소리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머리카락 굵기만큼 얇은 이 섬유는 원치 않는 소음을 상쇄하는 음파를 스스로 만들어 내거나, 진동을 차단해 소리의 전달 자체를 멈출 수 있다. 즉, 커다란 흡음벽 없이도 가벼운 직물 한 장이 넓은 공간의 소음을 선택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구조적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왼쪽) MIT 연구진이 개발한 전기 반응성 실크 패브릭과 (오른쪽) 원단직물이 소리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촬영한 라디오 리포터 캐시 노박(Kathy Novak)의 이미지 photo by KCBS radio reporter, Kathy Novak © Stephen Lam/Reuters 출처: CBC Radio

 

MIT 센서블 시티랩(Senseable City Lab)의 'Local Warming' 프로젝트는 열 제어 분야에서 비물질적 구조의 전환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시스템은 와이파이 위치 데이터와 적외선 히터를 결합해, 실내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다니는 개인 맞춤형 난방 스포트라이트를 구현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에너지 절약이다. 연구에 따르면 상업용 건물의 난방 시스템은 건물 점유율과 에너지 소비 사이에 극적인 상관관계가 부족하며, 많은 에너지가 비어 있는 공간을 덥히는 데 낭비된다. ‘Local Warming’은 이러한 비효율적인 '주변 난방(Ambient Heating)'을 피하고, 열을 오직 사람이 있는 곳에만 집중시킨다.

 

건축 비엔날레 협업 프로젝트, "Local Warming" © MIT 센서블 시티 랩(Senseable City Lab)출처:MIT SENSEable City Lab

 

현대 건축 공학은 눈에 보이는 구조물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물리적 흐름을 공간의 경계와 안전을 규정하는 핵심 구조로 활용한다.

 

양압과 음압으로 청정구역을 관리하는 병원 (Negative Pressure, Positive Results ❘ Facility Management) 출처: LEE COMPANY

 

병원 수술실이나 무균 시설 같은 청정 구역(Cleanrooms)에서는 양압(positive pressure)과 음압(negative pressure) 시스템이 물리적 벽체보다 훨씬 강력한 경계선 역할을 한다. 양압은 외부 오염원이나 병원균이 내부로 침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되며, 음압은 오염물질을 내부에 가두어 외부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한다. 2025년 현재 ISO 14644(청정실(Cleanroom)과 관련 시설의 설계·운영·검증 기준) 표준 개정은 청정실 성능 검증을 위해 공기 분배 시스템 및 환기 최적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공기 흐름이 더 이상 단순한 기술 요소를 넘어, 법적으로 요구되는 구조적 기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COVID-19 퇴치에 사용되는 클린룸 기술 © 2006 – 2025, All Rights Reserved. Lighthouse Worldwide Solutions 출처: Lighthouse Worldwide Solutions

 

디지털 트윈은 실제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실시간 가상 복제본이다. 이 기술이 도입되면서 건물이 운영되는 방식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철근이나 콘크리트 같은 물리적 구조가 건물의 성능과 안정성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가상 복제본 안에서 흐르는 데이터가 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뉴욕의 설계사무소 SHoP 아키텍츠는 브루클린 타워의 실시간 3D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 건물의 상태 변화나 운영 데이터를 즉시 모델에 반영하고, 여러 이해관계자가 그 정보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이처럼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모니터링 도구를 넘어, 건물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구조로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트윈 출처: Inside Towers

 

SHoP Architects가 실시간 3D 디지털 트윈을 사용하여 고층 빌딩이 건설되기 전에 이를 구상하는 방법출처: Unity: How SHoP Architects use real-time 3D digital twins to envision skyscrapers before they're built

 

건물은 이제 단순히 벽과 기둥만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실내의 온도나 공기 흐름을 조절하기 위해 설치된 수많은 센서들이 데이터를 보내오면, 그 데이터를 분석하고 필요한 명령을 내리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함께 작동한다. 이렇게 되면 소프트웨어 자체가 건물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구조’처럼 기능하게 된다.

 

디지털 트윈 기술이 더 발전하면 이 흐름은 건물 한 채에만 머물지 않는다. 건물들이 연결되어 도시 전체의 에너지 사용, 교통 흐름, 환경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도시 단위의 운영 시스템으로 확장된다.

 

결국 현대 건축에서 공간을 결정하는 힘은 더 이상 철근과 유리 같은 물리적 재료만이 아니다. 바람, 공기, 열, 데이터 같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공간의 성능과 작동 방식을 함께 만들어가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한국 네이버, 사우디 스마트시티 디지털 트윈 구축 출처: CDO TRENDS

 

 

에필로그: 건축이 다시 묻는 것들

 

우리는 목재·석재·철과 유리·신소재를 지나 비물질의 세계까지, 시대의 재료를 따라 건축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오늘, 특정 재료가 시대를 규정하던 선형적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기술은 우리를 물질의 제약에서 해방시켰고, 건축가는 무엇이든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과잉 시대에 서 있다.

 

그래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역시 달라진다. “어떤 재료를 쓰는가?”가 아니라 “그 재료와 기술을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가?”

 

20세기 영국의 건축가이자 사상가인 세드릭 프라이스(Cedric Price)는 말했다.

“Technology is the answer, but what was the question?”(건축이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이었는가?)

 

기술이 정답처럼 보이는 시대일수록, 건축가의 역할은 오히려 더 넓어진다. 건축가는 기술이 놓치는 인간의 감각과 사회의 결을 읽어내며, 재료와 기술을 새로운 의미로 해석하는 사상가에 가까워진다.

 

‘시대의 재료’는 결국 물성과 스펙이 아니라, 세상을 읽고 해석하는 깊이 자체일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무엇이 다음 시대의 감각을 형성하는가? 시대의 재료를 향한 건축가의 질문은, 이제 또 한 번 새롭게 출발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공간의 진짜 질서를 만들어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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