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H입니다!
오늘은 ‘다중성의 시대’ 입니다.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1980년대'
격변에서 번영으로
1980년대는 냉전의 막바지와 로널드 레이건과 마가렛 대처의 신자유주의의 부상, 금융자본의 세계화, 일본과 아시아의 급성장하는 시기입니다. 전자산업이 확산되었고, 소비의 가속까지, 정치, 경제, 문화가 동시에 재편되었어요. 한편으로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유럽 체제 전환,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프로제(국가 상징 건축)에 의한 도시 정체성의 변화와 1988년 서울올림픽 같은 초대형 이벤트는 국가와 도시가 브랜딩을 통해 세계 무대에 서려는 열망을 보여주게 됩니다.


다중성의 시대
포스트모더니즘, 하이테크, 그리고 해체의 전주
전후 모더니즘이 지향한 보편언어는 역사, 장소, 상징을 다시 불러들이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도전 받았고, 한편으로는 구조, 코어와 설비를 외부로 드러내는 하이테크 건축도 유행하게 되었어요.
특히 1988년 MoMA 전시는 ‘해체주의’라는 말로 새로운 형식을 명명했고, 케네스 프램프턴의 ‘비평적 지역주의’는 장소성과 재료성을 통해 세계화의 균열을 읽어내려 했지요.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88올림픽을 전후해 도시 인프라와 대형 프로그램이 한강 축을 따라 전개되며, ‘국가 이벤트’가 도시와 건축을 재구성하게 되었답니다.

과거로부터 온 장식과 최신 기술 건축의 대비
포틀랜드 빌딩과 HSBC 빌딩
(포틀랜드, 마이클 그레이브스, 1982), (홍콩, 노만 포스터, 1985)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시청 근처에 지어진 이 15층짜리 시 청사 건물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아이콘으로 불린답니다. 건축가 마이클 그레이브스가 설계한 포틀랜드 빌딩은 단순한 유리박스로 대표되던 당시 공공건축에 과감한 변화를 일으켰어요. 정면에는 크고 과장된 청록색 키스톤 장식과 쌓아올린 듯한 다홍색 기둥들이 그려져 있고, 건물은 고전 건축의 받침대, 기둥, 상인방 3부분 구성을 색과 형태로 재해석했지요.
외벽 색채도 독특하여, 아래쪽은 짙은 녹색 타일, 중간은 테라코타 오렌지와 청색 장식, 상부는 크림색 패널로 나뉘어 주변 환경과 대비를 이루면서 도시 맥락을 반영하려 했답니다. 이러한 디자인은 현대주의의 균일함을 탈피해 건축 언어를 되찾으려는 상징적 몸짓이었다고 그레이브스는 설명했어요.




그러나 완공 후 이 건물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어요.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은 이 건물에 대해, 건축계 일부는 ‘피상적인 역사주의’ 라며 혹평했고 실용성 면에서도 작은 창문과 낮은 천장 등으로 직원들의 불평을 샀습니다. 실제로 비용 절감을 위해 창문 크기가 최소화되면서 실내가 어둡고 답답했기 때문에, 기능을 희생하고 외관 장식에 치중했다는 지적이 나왔죠.
한편, 이 과감한 건축으로 포틀랜드가 전국적 관심을 받으며 포스트모던 건축의 신호탄이 되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답니다. 결국 포틀랜드 빌딩은 2011년에 미 국립역사등록에 오를 만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최근에는 노후한 외피를 교체하는 등 보존과 개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색색의 장식과 익살스러운 입면으로 80년대 소비주의와 역사 회귀 분위기를 대변했던 이 건물은, 건축이 기능만이 아니라 문화적 서사가 될 수 있음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사례라 할 수 있어요.



아시아 금융 중심지 홍콩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첨단인 은행 본사가 탄생하게 됩니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HSBC 빌딩은 ‘세계 최고의 은행 건물’을 만들라는 주문 아래, 80년대 최첨단 기술과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프로젝트였어요. 전체 예산 10억 달러를 넘긴 이 건물은 조립식 모듈 공법과 다리 구조 공학을 도입해 빠르게 지어졌는데, 이는 부품을 공장에서 미리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는 프리패브 공법으로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었어요. 완성된 건물 외관은 거대한 철제 골격이 층층이 드러나 있어, 강철로 짠 투명한 마천루 같은 인상을 줍니다.
HSBC 본사의 가장 놀라운 공간은 중앙 아트리움인데, 무려 50미터 높이의 유리벽과 거울 같은 태양 반사판을 통해 한낮의 자연광이 로비 깊숙이 흘러 들도록 설계되었어요. 덕분에 빽빽한 도심 속에서도 건물 내부는 밝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게 된것이죠. 포스터는 홍콩의 풍수 개념도 존중하여, 땅의 기운이 흐르도록 1층을 비워 건물을 설계하게 되었고, 길거리에서 바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로비로 올라가게 한 독특한 구성으로, 건물 아래를 사람과 주변의 기운이 통과하게 한 것이지요. 즉 서구 기술과 동양의 풍수 문화가 접목된 사례로 회자 된답니다.
파격과 상상의 도시 공원
파리 라 빌레트 공원
(파리, 베르나르 츄미, 1987)

파리 북동쪽 도살장 부지에 조성된 전통적 공원의 개념을 뒤집은 혁신적인 공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는 국제현상설계에 당선되어 이 프로젝트를 맡았고,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조언까지 구하며 해체주의적 설계에 도전했습니다.
라 빌레트 공원은 단순히 나무와 잔디를 꾸민 휴식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 공간들을 한데 품은 21세기형 공원으로 기획되었죠. 츄미는 공간을 점, 선, 면의 체계로 구성하여, 공원 디자인에 내재한 관습적 질서를 과감히 해체했어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공원 곳곳에 격자 형태로 배치된 35개의 붉은 색 ‘폴리(folly)’ 구조물인데, 각기 독특한 형태를 지닌 이 작은 건축들은 해체주의 건축의 개념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폴리들은 본래 기능보다 순수한 구조와 형식의 실험으로 계획되었고, 정형화된 공원의 질서를 깨뜨리는 시각적 표지물이 되었답니다.




전통 공원이 휴식과 조경에 치중했다면, 라 빌레트는 공연, 전시, 놀이 등 이벤트와 상호작용의 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었지요. 넓은 잔디와 운하, 그리고 곳곳의 문화시설(과학관, 음악당, 극장 등)까지 어우러져 이곳은 현대 파리를 대표하는 복합 문화공간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미테랑 대통령 시절 추진된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완공 이후에도 찬반 논쟁을 불렀지만, 도시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도로서 건축, 조경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기존 맥락을 해체한 진공 속 공간을 만들려 한 츄미의 라 빌레트 공원은, 80년대 건축이 어떻게 사회문화적 상징과 도시 재생을 실험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조각품 같은 극대화된 조형성의 건축비트라 디자인 뮤지엄
(바일 암 라인, 프랭크 게리, 1989)


독일 바일암라인의 한적한 들판에 솟아난 새하얀 조각 같은 건물은 매우 독특합니다.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이 뮤지엄은 그의 유럽 데뷔작으로, 60세에 처음 유럽 무대에 진출한 거장이 선보인 작품이었지요.



자유롭게 겹쳐진 기하학적 매스들은 마치 겹겹의 목련 꽃잎처럼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독특한 외형을 빚어냈죠. 당시로선 파격적인 이 디자인에는 ‘해체주의’ 건축 개념이 스며있어, 기존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조형 실험이 엿보입니다.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문을 연 1989년은 뉴욕 MoMA의 해체주의 건축전(1988) 직후로, 이 건물은 1990년대 건축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현대 건축 거장들의 실험장이 된 비트라 캠퍼스에서, 이 작은 박물관은 이후 게리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거대한 랜드마크들에 비해 절제되고 소박하지만 영롱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디자인 박물관이라는 성격에 걸맞게 형태 자체가 하나의 전위적인 디자인인 이 건물은, 80년대 후기 유럽 건축이 어떤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작은 뮤지엄은 이후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1997) 같은 현대건축의 전초전으로 평가받아요.
현대판 개선문라 그랑드 아르슈
(파리 라데팡스, 요한 오토 폰 스프레켈센, 1989)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는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문을 열었어요. 라 그랑드 아르슈(La Grande Arche), 직역하면 ‘거대한 개선문’이라는 이름의 이 건축물은 말 그대로 20세기의 새로운 개선문이라 할 만한 상징적인 프로젝트였죠.




라 그랑드 아르슈는 파리 라 데팡스(La Défense) 지구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정육면체 형태의 아차인데, 높이와 폭, 깊이 각각 약 110m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의 빈 사각형 구조로 그 안쪽을 통째로 비워두어 마치 하늘을 향해 열린 창처럼 보인답니다.
이 건축은 덴마크 건축가 요한 오토 폰 스프레켈센이 설계하여 1989년 프랑스 혁명 기념일에 맞춰 완공되었어요. 파리 중심부의 루브르 박물관에서부터 개선문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축선이 이 그랑드 아르슈까지 곧게 뻗어 있어, 멀리서 보면 옛 개선문과 신 개선문이 한 줄에 들어오는 장관을 이룹니다. 정부는 옛 군사 승리의 개선문과 달리 이 새로운 아치는 ‘인류의 인도적 이상’을 기리는 상징물로 삼았다고 해요.



거대한 프리스트레스 콘크리트 프레임을 세우고 바깥은 하얀 대리석과 유리로 마감했어요. 구조물 아래에는 지하철과 고속전철 터널, 고속도로가 지나가서, 아치를 약간 대각선으로 틀어서 기초를 피하게 설계한 점도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아치 상부에는 전망대와 전시공간이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파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요. 완공 당시엔 파리 시민들이 “미래 도시의 관문”이 생겼다고 크게 환호했고, 지금도 라 데팡스의 초고층 빌딩 숲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답니다.
한국 현대건축 유산의 아쉬운 퇴장서울 힐튼 호텔
(서울, 김종성, 1983)
마지막으로 소개할 건축은 우리나라 서울의 1980년대 작품이에요. 서울 힐튼 호텔(현 밀레니엄 힐튼 서울)은 1983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힐튼 체인 호텔로서 설계를 맡은 김종성 건축가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로 11년간 일한 경력을 지닌 김종성은 “Less is more”라는 모토에 충실한 간결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힐튼 호텔은 바로 그런 미니멀리즘과 장소 맥락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호텔은 마치 남산을 끌어안는 병풍처럼 펼쳐지도록 설계되는데, 24층 높이의 파사드에는 짙은 브론즈 유리와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해 단정하면서도 위엄있는 입면을 완성했어요. 내부에는 18m 높이의 웅장한 아트리움 로비를 만들어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개방감이 느껴지도록 했어요. 고풍스러운 청동, 트래버틴 대리석, 참나무 패널 등 시간이 지나도 품격을 유지할 소재들을 곳곳에 적용한 것도 특징입니다.
1980년대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에서 이 호텔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단골 회합 장소가 될 만큼 사회적 중심공간 역할도 했습니다. 김대중, 김종필의 DJP연합 협상이 비밀리에 이곳에서 이뤄졌고, 큰 국제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렇듯 건축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치 있던 서울 힐튼 호텔이지만, 안타깝게도 개관 40년 만인 2022년 영업이 종료되었답니다. 많은 건축인들이 철거 결정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현대 건축유산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서울 도심의 부동산 개발 열풍 속에서 결국 철거의 운명을 맞게 됩니다. 건축은 시대의 기억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도 매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50년이 안 된 건물이라도 보존 가치가 있으면 보호할 수 있게 제도가 개선되길 바랍니다.
다중성의 문법
이처럼 1980년대의 건축물들은 각기 다른 이야기와 미학을 담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시대 변화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박물관부터 공원, 사옥, 호텔에 이르기까지, 건축은 당시의 사회, 문화적 전환을 형상으로 표현했습니다.
포스트모던의 유희, 하이테크의 진보, 해체주의의 철학이 공존했던 다채로운 1980년대의 건축 풍경은 1990년대에 도시 재생과 문화 전략으로 응축됩니다. 빌바오 구겐하임으로 상징되는 ‘빌바오 효과’, 네트워크 도시와 공항, 철도 허브, 미니멀, 뉴모더니즘과 초대형 복합프로그램, 디지털 모델링의 본격화가 이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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